본격 발로 쓰는 영길리어 변천사 3-1: 간략한 고대 영어 시대의 역사 -영길리어변천사

오랜만에 다시 하는군요.

역사는 그 당시 언어 변화에 큰 영향을 끼치죠. 전쟁, 타 민족의 이주, 새로운 문화적 현상, 인접 국가간의 교류, 그리고 나중에는 사전과 문법책의 등장, 인쇄술 등이 언어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연작 포스팅에서는 간략하게만 언급하겠습니다.



1. 선사 시대~청동기 시대

지금이야 영국은 섬이지만, 빙하기 때는 해수면이 낮아져서 유럽 대륙에 붙어 있었습니다. 아일랜드도 브리튼 섬(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즈가 있는 섬)과 붙어 있었죠. DNA 분석 결과 대략 마지막 빙하기가 오기 전에 인류가 브리튼 섬에 처음 발을 디딘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그 때만 해도 브리튼 섬은 빙하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매력적인 곳은 아니었는지, 브리튼 섬을 버리고 남유럽으로 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기원전 12,000년경 다시금 인류가 브리튼 섬에 도착하죠. 그리고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BC 9500년쯤에 브리튼 섬과 아일랜드가 분리되고, BC 6500년경이 되면서 영국과 유럽 대륙이 분리됩니다.

기원전 4000년경 영국은 신석기 시대였습니다. 물론 이 당시의 언어 기록은 전혀 없죠. 있어 봐야 켈트 족 기록에나 조금 나올 뿐입니다. 하지만 아마도, 이들이 인도-유럽 어족 사용자는 아니었을 것 같다고 추정할 수 있을 겁니다.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2,500년부터 800년경으로 추정합니다. 기원전 2700년경 비커 문화가 출몰하죠. 이는  이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가 마치 비커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입니다. 영국, 아일랜드의 대부분, 스페인/포르투갈, 프랑스 일부 등에 퍼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외에도 유적은 많죠. 스톤헨지도 이때 세워졌습니다.

대략 기원전 12세기 쯤에 청동기 문화에 큰 변화가 오게 됩니다. 새로운 청동기 문화가 등장한 것이죠. 대략 이때쯤 켈트족이 영국에 도착한게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습니다.


2. 켈트족의 상륙

언제 켈트족이 상륙했는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위에 언급한 대로 기원전 12세기로 보는 추측도 있습니다만, 현재까지 켈트족의 문화와는 또 다르기 때문에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고대 로마 역사가인 타키투스는 브리튼 섬의 켈트족이 유럽 대륙에서 건너갔다고 보고 있습니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쟁기에서 내륙 지방은 선주민의 후예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해안 지방에서는 벨기에에서 약탈과 전쟁을 위해 건너온 사람들이 있다고 기록했습니다.

기원전 325년 쯤에 유럽을 여행했던 피테아스의 기록(역사가 스트라본의 기록에서 일부만 남아있죠)에서 처음 브리튼 섬의 기록이 등장합니다. 스트라본의 기록에는 '브리타니케' 라고 등장하는데, 이는 '브리튼의' 라는 뜻입니다. 즉 피테아스가 처음으로 '브리튼'이라는 말을 쓴 셈이죠.

주: 그 당시 필사본에는 P와 B가 혼재되어 등장합니다. 그 당시 웨일즈 어로 'Ynys Prydein'(브리튼인의 섬) 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볼 때, 초기에는 'Pretania' 또는 'Pritannia' 라고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켈트족의 등장쯤 해서 영국은 철기 시대로 들어가게 됩니다.


3. 로마의 지배

기원전 55~54년쯤에 카이사르는 브리튼 섬을 2회에 걸처 공격합니다. 나름대로 성공적이었지만, 이는 정복전쟁은 아니었죠. 서기 43년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에 브리튼 섬은 로마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됩니다. 서기 50년이 되면 지금의 잉글랜드 지방에 해당하는 지역을 거의 다 지배하게 됩니다.

로마인들은 이 지역을 '브리타니아' 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이 지배하지 못한 곳은 북쪽 칼레도니아(스코틀랜드 지역) 과 아일랜드 정도지요. 기존에 살던 켈트인들은 다른 곳으로 도망치거나 아니면 로마에 동화되거나 하는  선택권이 주어졌습니다. 이 때 남은 자들은 브레톤인이라 불리게 되고, 이들은 로마화됩니다. 도망친 자들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등으로 도망갑니다.


(출처: 영어 위키피디아.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a/aa/Brittain_410.jpg)


이 지도는 서기 410년경 로마의 강역입니다. 노란 색 안쪽이 그때는 다 로마 땅이었죠. 물론 로마가 스코틀랜드를 공격한 적이 없지는 않습니다. 픽트 족 등 도망친 켈트 족의 위협은 계속되었고, 한때는 더 위로 올라가서 안토니누스 방벽을 쌓고 남부 스코틀랜드까지 지배 하에 놓은 적도 있었죠.

(출처: 영어 위키피디아.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0/0e/Hadrians_Wall_map.png)

이 지도에 나온 선까지 올라갔습니다. 밑에는 유명한 하드리아누스 방벽이 보이는군요.

하드리아누스 방벽은 서기 122년,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브리타니아 방문을 하면서 세워졌습니다. 계속되는 켈트 족의 위협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죠. 지금도 이 방벽과 안토니누스 방벽의 유적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안토니누스 방벽은 12년 후에 버려지고, 로마 군단은 하드리아누스 방벽까지 후퇴하게 됩니다. 나중에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가 208년에 브리타니아에 도착해서 방벽을 강화하고, 이 지역의 방비를 강화합니다. 이건 고작 몇 년 동안만 지속되었지만, 후대 로마 역사가들은 안토니누스 방벽을 가끔 세베루스 방벽이라 부르게 됩니다.

후에 밑에서 나오게 되는 성 베다도 이 때문에 안토니누스 방벽을 하드리아누스 방벽과 헷갈리게 되죠.

로마가 그리스도교화 되면서 브리타니아에도 그리스도교가 전파됩니다. 성 테르툴리아노(Quintus Septimius Florens Tertullianus) 의 기록에는 '브리타니아에도 그리스도교가 있다!' 라고 되어 있죠.

주: 노파심에서 말씀드립니다만 여기서 언급되는 그리스도교는 당연히 가톨릭입니다. 그냥 기독교라고 했을 때에는 행여나 개신교로 오해를 빚는 결과가 나올까봐 말씀드립니다. 절대 개신교 아니에요.


4. 앵글로-색슨 시대

서기 5세기가 되었습니다. 로마의 상황은 매우 안좋아졌죠. 서로마-동로마로 나뉘게 되고, 게르만족의 침입은 계속되고.. 결국 로마는 브리타니아에서 군대를 빼게 됩니다. 이때는 서기 410년이죠.

로마군단이 떠나자, 과거 로마에게 털리고 도망쳤던 켈트족이 "이때다!" 하면서 옛 땅을 되찾기 위해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물론 도망친 켈트족으로서는 빼앗긴 땅을 다시 찾기 위한 전쟁이었습니다만, 브레톤인들로는 야만족의 침략이었죠. 그래도 같은 민족이니 어떻게 해보려고는 했습니다. 만,

더 심각한 위협이 오고 있었습니다.

네. 게르만 족이 오고 있었습니다. 기록으로는 449년부터 게르만 족의 침략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 전부터 계속 게르만족이 영국 땅으로 와서 눌러 앉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지요. 

449년이라는 정확한 연도가 나올 수 있는건 좋은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성 베다(St. Bede the Venerable께서 남긴 자료인 '영국민교회사(Historica Ecclesiastica Gens Anglorum, Ecclesiastical History of the English Nation)' 에 게르만 족의 침략이 나와 있습니다. 이건 730년경에 기록되었죠.


(화가 J. D. 펜로즈의 그림 "존경스러운 성 베다의 요한 복음서 번역". 출처: 영어 위키피디아.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7/78/The_Venerable_Bede_translates_John_1902.jpg)


영국민교회사에 따르면, 449년에 게르만족이 영국을 침략했고, 이들은 앵글족과 색슨족, 주트족이었습니다.
앵글족은 슐레스비히 동쪽에서 와서 현재의 서포크, 노포크, 캠브리지셔에 정착했습니다.
색슨족은 엘베강과 베제르강 사이에서 와서 에섹스, 서섹스, 그리고 노던헴프셔에 정착했습니다.
주트족은 덴마크 남쪽에서 와서 켄트, 와이트 섬, 서던헴프셔에 정착했습니다.

이 외의 신뢰할 만한 기록으로 성 질다(St. Gildas) 의 '브리튼의 전복과 정복(De Excidio et Conquestu Britanniae, On the Ruin and Conquest of Britain)' 이 있습니다. 로마 시대가 끝나고 게르만 족의 시대로 가는 전환기 때 성 질다께서 강론하신 내용으로 총 3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1부는 로마가 브리튼 섬을 정복한 후 이 시점까지의 역사, 아래에 나온 바돈 산 전투가 있습니다. 2부는 5명의 왕의 죄악, 3부는 그 당시 영국 성직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프랑스의 생-질다-드-뤼 마을 근교의 성 질다의 성상. 출처: 영어 위키피디아.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c/c9/Statue_St-Gildas_0708_NB1.jpg)


결국 게르만족이 영국으로 와서 브레톤족을 압박하게 되었죠. 물론 브레톤족은 손도 못쓰고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6세기 초반에 브레톤족이 한 지도자 밑에 뭉쳐서 게르만족과 싸웠었죠. 그리고 대략 500년쯤에 위에서 설명된 바돈 산 전투가 일어나고, 이 전투에서 브레톤 족이 승리를 거둡니다만 게르만 족의 침략을 막을 수는 없었죠.

바돈 산 전투는 대략 서기 490~517년 사이에 일어난 전투로, 어디에서 전투가 벌어졌는지는 논란이 많습니다. 리딩턴 성이다, 바스 근교의 솔즈버리 언덕이다, 등등 많습니다. 성 질다의 기록에는 대략 서기 503년으로 나와 있습니다. 성 베다의 기록에는 서기 449년으로 나와 있죠.

덤: 희한하게 후대의 역사 기록인 앵글로 색슨 연대기에는 이 전투에 관한 기록은 없습니다.

9세기 경 기록인 '브리톤족의 역사(Historica Brittonum, The History of Britons)' 에는 그 지도자를 '아더' 라고 기록했습니다. 네. 아더왕이죠.

아더왕 하면 각종 전설이 많죠. 역사적으로도 기록이 있습니다. 위에 언급했던 '브리톤족의 역사' 에 있죠. 하지만 과연 이 기록이 믇을만 한가? 는 논란거리입니다. 이 외에도 '웨일즈 연대기(Annales Cambriae, The Annals of Wales)' 에도 아더왕과 모드레드, 멀린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바돈 산 전투와 캄란 전투(아더왕과 모드레드가 서로를 죽인) 등이 있죠. 하지만 이 기록 역시 얼마나 믿을만 한지를 놓고 논란이 많죠.

아무튼. 결국 영국은 게르만족에 의해 점령당합니다. 게르만족의 점령을 피한 곳은 스코틀랜드, 웨일즈, 콘월 정도입니다. 그리고 일부 브레톤족은 프랑스 브르타뉴로 도망치게 되죠.



(출처: 영어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wiki/File:British_kingdoms_c_800.svg)


이 지도는 앵글로 색슨 족의 침략이 끝난 후, 약 서기 800년대의 영국입니다. 이 때 점령당한 곳에서는 앵글로 색슨족의 7왕국이 세워졌죠. 지도에 나오듯이

1. 노섬브리아 (Northumbria)
2. 메르시아 (Mercia)
3. 이스트 앵글리아 (East Anglia)
4. 웨섹스 (Wessex)
5. 에섹스 (Essex)
6. 켄트 (Kent)
7. 서섹스 (Sussex)

이 중 웨섹스, 이스트 앵글리아와 메르시아, 노섬브리아가 강성했고 켄트와 서섹스, 에섹스는 소규모 왕국이었습니다. 물론 이 외에도 고만고만한 왕국과 지역이 있었죠.

이 때 그리스도교의 명맥은 잠시 끊기게 되고 앵글로-색슨 족의 종교가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다가 400년경 아일랜드에 성 파트리치오(Saint Patrick)께서 아일랜드를 그리스도교화하게 되고, 이는 나중에 영국 본토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이 성 파트리치오는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으로서, St. Partick's Day 라는 축제가 있을 정도죠.

(아일랜드의 성 무레다흐 성당의 성 파트리치오의 스테인드 글라스. 출처: 플리커/영어 위키피디아. http://www.flickr.com/photos/sicarr/3252088322/in/set-72157613324540934/)


영국 북부의 린디스파른에 아일랜드에서 오신 성 아이다노(St. Aidan of Lindisfarne. 이분은 2008년에 영국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되죠) 께서 노섬브리아 왕국의 주교가 됩니다.

(뉴욕의 성 십자가 수도원의 성 아이다노의 스테인드 글라스. 출처: 플리커/영어 위키피디아. http://www.flickr.com/photos/mariya_umama_wethemba_monastery/775890836/)


서기 597년에 성 아우구스티노께서 영국으로 건너가게 되어 켄트 왕국에 주교좌를 정하고 활동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때는 아일랜드 교회와 로마 교회의 관습에 차이가 있었다나요. 이거 일치가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주: 이 분은 교부 학자이신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와는 다른 분입니다.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면서 영어에 몇 가지 변화가 오게 됩니다. 간략히 말해서 로마 알파벳이 들어오고, 이때부터 영어가 문서로 적히기 시작합니다.


5. 바이킹 침략

그러다 9세기에 들어서면서 영국에 바이킹이 침입을 해오죠. 787년 덴마크 바이킹이 도세트셔에 처음으로 상륙합니다. 그 후에 계속 침략해 옵니다. 그 당시 영국의 국력으로는 이들을 다 막아내기는 쉽지 않았죠. 이들은 도시와 수도원을 약탈합니다. 그러다가 865년 대규모 바이킹 군대가 이스트 앵글리아에 상륙해서 그곳을 점령하고 웨섹스로 이동합니다. 하지만 웨섹스의 알프레드 대왕(Ælfrēd, Alfred the Great) 이 871년에 애쉬다운에서, 그리고 878년 에딩턴에서 2회에 걸쳐 대승을 거두어 막아냅니다.

(윈체스터의 알프레드 대왕 동상. 출처: 영어 위키피디아.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2/22/Statue_d'Alfred_le_Grand_%C3%A0_Winchester.jpg)


그리고 알프레드 대왕과 그 당시 바이킹의 지도자인 구스럼은 조약을 맺어, 바이킹의 강역을 북쪽 데인로 지역으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바이킹이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라는 요구를 관철시킵니다.

(출처: 영어 위키피디아.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3/37/England-878ad.jpg)

이 지도는 878년의 영국입니다. 노란색 부분이 바로 데인로 지역입니다. 즉 데인인(덴마크인) 들의 지역이죠.

알프레드 대왕은 영국 역사상 유일하게 '대왕' 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죠. 그리고 스스로를 '앵글로-색슨의 왕' 이라 불렀습니다. 그리스도교 영웅으로 칭송되었죠. 하지만 알프레드 대왕은 바이킹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막아내기만 한 건 아니었습니다. 군대를 키우고, 방어 시스템을 만들고,

알프레드 대왕은 라틴어 서적들을 영어(고대 영어) 로 번역하고, 국가적인 영어교육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이 제도는 경제적 여유가 되는 모든 자유민 자제는 영어를 읽고 쓸 수 있을 때까지 학업에 전념하도록 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수도원을 중심으로 학교를 증설하고, 유럽의 유능한 학자들을 초청해서 학문의 기풍을 세우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5세기부터 11세기의 역사를 다룬 '앵글로-색슨 연대기(Anglo-Saxon Chronlcle)' 이 집필됩니다.

10세기에 들어서 알프레드 대왕의 아들인 에드워드, 그리고 증손자인 에드가 대에 이르러 전투와 결혼 등으로 영국은 통일됩니다. 하지만 데인로는 영어에도 영향을 줬죠. 3000개 이상의 영어 단어가 스칸디나비아에서 왔죠.


6. 덴마크 지배

11세기에 들어서 바이킹의 침략이 다시 가중화됩니다. 이번에는 영국은 결국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덴마크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됩니다. 이때 왕은 에셀레드인데, '준비 안된 에셀레드(Æthelred the Unready)' 라는 불명예스러운 칭호가 덧붙게 됩니다.

영국을 지배하게 된 것은 덴마크 왕인 크누트. 그는 잉글랜드 뿐만이 아니라 노르웨이, 덴마크의 왕관도 쓰게 되고 스웨덴의 일부도 지배하는 거대 국가를 세웁니다. 하지만 크누트의 사후 그의 왕국은 다시 분열되죠.

영국의 왕관을 차지한 것은 '고해왕' 에드워드 (Edward the Confessor) 입니다. 그는 '준비 안된' 에셀레드의 아들이었죠. 그런데 정작 에드워드가 죽을 때 후계자가 명쾌하지 않았죠. 이에 여러 실력자들이 각자의 이유를 대며 영국 왕관을 차지하려 합니다.

1) 에드워드의 처남 에섹스 백작인 해롤드 고드윈슨(Harold Godwineson, Earl of Wessex.). 영국 귀족들의 지지를 받았죠.
2) 노르웨이의 왕 하랄드 하랄드라데(Harald Hardrada, Harald III of Norway.). 크누트의 후계자라는 명분이 있었죠.
3)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프랑스어로 기욤. William the Conqueror. / Guillaume le Conquérant). 그의 큰고모인 노르망디의 엠마(Emma of Normandy) 는 에셀레드 왕의 부인이었고, 예전 에드워드 왕이 자기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노라고 약속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예전에 물에 빠진 에드워드 왕을 구해준 적이 있었고, 그 때 함께 브리타니 공작 코낭 2세 (Conan II, Duke of Brittany) 를 공격해 이긴 적이 있습니다. 그 때에 윌리엄은 에드워드가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해롤드 고드윈슨이 영국 왕이 됩니다만 나머지 실력자들이 이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습니다. 먼저 움직인 것은 노르웨이 왕인 하랄드 하랄드라데였습니다. 1066년 그는 대함대를 이끌고 요크셔에 내렸습니다만 스탬포드 다리의 전투에서 패해 전사했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 노르망디 공작의 함대가 웨섹스에 상륙하게 됩니다.




...간략하기는 커녕 매우 길어졌네요.

언제나 그렇듯이 오/탈자 지적, 그 외의 질문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참고문헌

Milward, C. M.(1996). A Biography of the English Language. Second Edition. Boston, MA: Wadsworth
Ramat, G. I. & Ramat, P. (2006) The indo-european langauges. New York, NY: Routledge
English Wikipedia
Caesar, G. I. Commentarii De Bello Gallico. 김한영 옮김.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 서울:사이, 2006
이동일. 『영어이야기』. 서울:한울, 2002

덧글

  • 검은월광 2011/01/12 15:24 # 답글

    섬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침략을 많이 받았군요.
  • Allenait 2011/01/12 17:33 #

    네. 특히 저 때에 침략이 많았죠. 물론 그 이후에는 노르만 족 말고는 없지만요.

    그러고 보니 노르만 족 이후로 상륙에 성공한 적이 없는것 같네요
  • hislove 2011/01/12 15:58 # 답글

    사실 영어 발달사를 보다 보면

    학부 시절에 그렇게 복잡하다고 까댔던 러시아어 발달사는 참 간략하고 쉬운 거였구나 라는 생각만 하게 됩니다. (......)
  • Allenait 2011/01/12 17:33 #

    워낙 고대에 역사가 많이 역동적이었으니 말이죠..
  • Schwarz 2011/01/12 21:57 # 답글

    영국 교회는 정통 가톨릭이랑 차이가 좀 있다고 본거 같은데 추가적인 내용은 없음???
    (교회권에서 기억나는거라곤 이젠 성녀 브지릿 밖에 모르겠다;;)
  • Allenait 2011/01/12 22:02 #

    성공회(영국 교회)는 좀더 후대 이야기야. 대략 16세기쯤 이야기지. 지금은 기원전부터 해서 11세기까지 이야기지.
  • young026 2019/05/02 21:05 # 답글

    테르툴리아누스 시절이라면 개신교는 당연히 아니지만 가톨릭도 아니죠. 개신교뿐만 아니라 가톨릭, 정교회 등도 아직 없던 시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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